날씨: 오늘의 온도계, 기억에 남는 온도는 영상 35도였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의 양구
휴가를 다녀왔다.
지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다소 얌전히 흘러갈 것만 같았던 휴가였는데
정말
몇 달 만에
좀 진한 행복함이 느껴졌던 휴가였다.
기억 속에서 잊혀지기 전에
휴가 이야기를 써보자.
...
목요일에 당직근무를 서면서
밤을 새고 다음 날, 금요일 아침에 달리듯 숙소에 내려와
짐을 주섬주섬 챙기고 바로 서울로 떠났다.
지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간 서울.
역시나 마찬가지로 부대-양구-동서울-강변역-반포역 코스로 왔다.
인상적이었던 건 이제 양구-동서울 코스가 기막히게 짧아졌다는 사실.
대략 한 시간 반 걸렸다.
감탄하며 동네로 와서는 역시 집 근처 스타벅스 아이스 라떼를 사 마셨다.
샤워를 가볍게 하고는 대학교 때 친구들 만나러 강남으로 향했다.
근데 친구'들'에서 걍 친구 한 명으로 바뀌어 있었다.
뭐 사실 내가 적극적으로 연락을 한 것도 아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
친구 정수를 만나서 강남에서 밥 먹고 바로 둘이 학교로 향했다.
언제나 변화하는 학교.
이제 졸업 후 일 년 반 지났는데
당장 눈 앞의 외관부터 여러모로 변화하고 있더라.
학교에 도착해서는 방송국 후배들 잠깐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해주고 난 뒤
다시 정수 및 다른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 좀 하다가
친구 설치가 남대문에 양주 사러 간다는 말에 혹해서
세 명은 남대문으로 향했다.
좀 돌아다니다 술 사는 거 구경했는데
확실히 저렴했다.
아주 좋은 참고가 되었다.
나중에 나도 남대문 와서 술 사야지..
...
남대문 코스를 끝으로 셋은 각자 흩어지고
난 집으로 바로 돌아왔다.
그 때가 대충 오후 7시 즈음?
잠깐 쉬다가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가 너무 많이 변한 것이 순간 생각이 나면서
사진으로 그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디카를 들고 되게 편한 복장으로 나의 초등학교로 향했다.
10년 만에 동네로 이사를 다시 오니 이런 것이 그리웠기에..
학교에 도착하니 정말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 건물이 하나 사라지고, 다른 건물이 생기고..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었다.
굉장했다.
그때와 지금 같은 건 학교의 이름 뿐이구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뭐 세상은 좋게 변하고 있을 테니까..
느긋하게 셔터를 누르고 있는데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소나기처럼 내렸다.
바로 학교에서 철수하고 동네 마트로 뛰어갔다.
배가 고팠다.
향긋한 비 냄새를 맡으며 장바구니 들고 장을 봤다.
혼자 고기 함 구워먹어보자 하는 마음에
싸구려 돼지 목살, 팽이버섯, 마늘, 깻잎, 새싹채소 등등이랑
요즘 내 주식이 되어가는 바나나까지..
소주를 한 병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집에 가서 양주 먹다 남은 거 마시자 하는 생각에 그냥 갔는데..
아무튼 집에 와서 보니 아뿔싸..
냉장고에 얼음이 없었다.
집에서 양주를 그냥 샷으로 먹기엔 너무 빡세서 그냥 술 없이 고기를 구웠는데..
냉장고 한 켠에 녹색 병 발견!
꺼내보니 매취순이었다.
그런데 뭔가 가루가 많이 떠다니길래
제조일을 보니 2004년..
만든지 5년이 넘은 술이다.
하지만 매취순에 유통기한이 있겠냐 싶어서 걍 깠다.
집에서 얌전히 가정적인 자세로 고기 구워 먹었다.
집에서 혼자 고기 구워먹은 건 예전에 가락동 살 때 이후로 오랜만인 것 같다.
되게 맛있었다.
그런데 너무 피곤해서였을까?
매취순 한 병에 살짝 취했었다.
그래도 그냥 자긴 아쉬워서 어떻게 버텨보려는데
밤 12시 즈음 형한테서 연락이 왔다.
비 온다고 우산 가지고 나오란다.
흔들거리는 몸을 이끌고 형을 마중나갔는데 비는 뭐 거의 안 오더만..
그렇게 집에 돌아와 바로 쓰러져 잤다.
...
이튿날 토요일.
방에서 컴터 하면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방에서 푸드득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검은 게 내 눈 옆을 휙 훑고 지나갔다.
'어 뭐야 이 씨발!!'
크게 놀라서 방에서 뛰쳐나와 문 닫고 대기..
뭔 벌레가 집으로 들어왔나 싶어서 열린 창문이 있나 다 뒤졌는데
전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나니 매미새끼였는데..
지난 밤 내내 여기 있었단 말인데..
생각만 해도 오싹하다.
아무튼
매미에 너무 쫄아서 저 놈을 어떡하지.. 고민하던 찰나
어렸을 때 매미 무쟈게 사냥했던 내 모습이 생각나면서
매미 따위에고 쫄고 있는 내 모습을 믿을 수 없었다.
갑자기 용기가 생기면서 책상과 벽 사이에 갇힌 매미를 집어들었다.
물론 역시 유쾌하진 않았다.
그리곤 창문 밖으로 던졌다.
최근 내 모습 중 가장 용감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
저녁을 형과 간단히 먹고(어제 남은 고기) 용산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용산을 돌아다니며 있다 보니
정신을 차리고 집에 돌아가는 길엔 1테라(1,000 기가) 크기의 하드가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랬다..;;
...
집에 돌아와서 진우와 무려 진우의 여자친구와의 대면 약속장소로 나갔다.
내 불알친구의 여자친구는 어떨까 하는 궁금한 마음에
만나서 밥 먹고 커피 한 잔 마셨는데
진우에게 대단히 어울리는 아가씨였다.
잘 만나서 좋고 앞으로도 잘 되길 바란다.
진우의 가끔씩 끔찍한 개그를 그녀가 웃어줬는데 뭐가 더 필요하랴..
...
진우 커플과 헤어지고 바로 이번 휴가의 메인 이벤트.
신동 초등학교 졸업생 모임.
이름은 거창해도 모임은 단촐했다.
하지만 그 멤버는 전혀 단촐하지 않았다.
정말 내 초등학교 황금기 시절을 휘어잡았던 멤버들.
나와 진우를 포함, 총 7명이 모였다.
그 가운데 두 명은 뭐 거의 10여 년 만에 만났다.
정말 오랜 친구가 그리워서 아쉬워 한 날들이 얼마나 길었는데..
마침내 그 숙원을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었던 날이었다.
그리웠던 친구들의 얼굴이 너무도 좋았다.
그 친구들도 나를 기억하고 즐거웠던 그 때를 추억하고..
시간은 흘렀지만 친구들은 그대로였고, 난 그게 너무나도 좋았다.
I really felt like home..
정말로 내가 살던 동네에 왔고, 그런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친구들과 함께 한 시간은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1차 가볍게 맥주 마시고 난 시간이 이미 새벽이었다.
하지만 아랑곳 않고 바로 신사동 껍데기 집으로 갔다.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고 즐거움으로 가득해 마냥 좋았다.
10년이 넘도록 너무도 하고팠던 이야기들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중
꼭 하고팠던 게 생각났다.
바로 우리의 추억의 장소인 초등학교에 같이 가는 것.
껍데기 집을 바로 나와서 편의점에 가 맥주 한 캔씩 쥐고
바로 초등학교로 향했다.
역시 아무도 없었고, 걍 구령대로 몰려가 맥주를 빨았다.
지난 날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잠깐 나눈 것 같았는데
이미 시간이 새벽 4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친구 정욱이 같은 경우에는 이제 주로 미국에서 사니
다음에 또 언제 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반드시 다시 만날테니, 그 날을 기약해야 했다.
그렇게 헤어지고 돌아와 진우는 내 방에서 재우고 난 안방으로~
...
복귀날 아침.
요즘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자주 듣는데
잭슨 형님의 big fan인 울 형님의 CD들을 한아름 들고
무작정 MP3 만들기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집 컴터가 느려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생신을 맞아 어머니와 일본에 가신 아버지께서 오후에 들어오신다기에
휴가를 나왔는데 부모님을 뵙는 것이 간절했던 나는
복귀 시간까지 다소 미루기로 했다.
(나중에 욕 좀 얻어먹었지만..)
아무튼 결국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복귀하는 순간까지 함께 하면서
힘들지만 행복한 마음을 안고 복귀했다.
요즘 너무 힘든데..
정말 너무 너무 힘든데..
좌절하고, 울컥하고, 괴롭고 힘든데..
따뜻한 무언가를 가슴에 안고 왔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운이 있다는 걸 알아서 좀 다행이다.
이번 휴가..
정말이지
간만에 가치 있는 휴가였다.